르네상스를 품은 예술가가 이루는 세계 

 현대인은 르네상스(Renaissance)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르네상스는 14~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서유럽의 문화운동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부활, 인본주의와 같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4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대 시대에 번창했던 건축, 미술, 문학에 이르러 황금기를 누렸던 시절을 기억했고 그때의 영광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게르만족 등의 침입으로 인해 번영했던 제국이 쇠퇴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야만적이라 생각하였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있는 중간세대, 즉 중세시대(Middle Age)를 탈피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보편적이던 로마네스크(Romanesque)나 고딕(Gothic Art) 양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먼저 미술가들이 과거의 개념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회화에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와 같은 대가들에게서 나타났다. 르네상스인이란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우리가 기억하는 르네상스 대표 화가들은 단순한 화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림, 문학, 신학, 철학, 수학, 과학, 해부학, 건축 등에서도 지식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485》,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1503》,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511~1512》,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 1513~1514》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 화가들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동시대적 화가들이었다. 또한 상호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예술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들 스스로는 몰랐겠지만 천재가 또 다른 천재를 계속해서 창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 《The Birth of Venus, 1485》, 《Mona Lisa, 1503》, 《The Creation of Adam, 1511~1512》, 《Sistine Madonna, 1513~1514》  (source: google image)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조각이 마음에 들자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주문했다. 우리에게는 <천지창조>로 잘 알려진 천장화를 무려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천장화를 만들기 위해서 밤낮 매달려 작업했을 그의 목과 허리를 비롯한 온몸은 굽고 굳기를 반복했을 것이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에 닿는 피부는 병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조수도 없이 현장에 나와 작업했고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전쟁이라도 나면 군대의 요새 설계까지 맡아서 했다. 그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각적 차원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슨 일이든 탁월하게 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마했을 그들의 프로 정신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으리라. 

▲ Sistine Chapel Ceiling (1508~1512), Michelangelo Buonarroti(source: google image)

건축에서 르네상스의 막을 연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불가능하기만 했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Duomo⦁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의 돔(dome)을 마침내 완성한다. 두오모(Duomo)의 아름다운 원형 돔이 오늘날 우리에게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천재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천재성이 여과 없이 발휘될 수 있도록 당대 쟁쟁한 경쟁자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와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가 존재했고, 때로는 그의 계획을 무시하거나 시기하고 비난하는 세력들과 상관없이 온전히 건축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지원해줄 후원자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일단 계획을 세우면 실행하고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홀로 연구하고 도전해낼 수밖에 없었다. 설령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의 친구이자 강력한 경쟁자였던 조각가 도나텔로와 고대 건축 양식을 연구하기 위해 로마에서 오랜 시간을 여행하였으며, 자신의 계획한 것을 이룰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로마에 남아 고대의 유적들을 분석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는 그가 애초부터 남다른 뜻이 있었음을 방증한다. 그의 업적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의 계획을 실현해서 마침내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뒤로 5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럽, 미국의 건축가들이 그의 건축을 참조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 Giorgio Vasari (source: google image)

오늘날에도 우리는 혁신적인 것을 마주하게 되면 곧바로 따르기보다는 이상하고 어색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후 여러 검증을 거쳐 학문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특성은 과거의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원근법이 대표적이었다. 르네상스 이전에 제작된 작품들에서 원근법을 발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혁신적이었다. 처음 원근법을 발견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그의 건축 양식에서 보다 체계적인 원근법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그림과 건축 양식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원근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들의 발견과 함께 계승해온 덕분이다. 

▲ 《Holy Trinity, 1424~1427》,  Masaccio(source: google image)

 회화에서는 처음으로 마사치오(Masaccio)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성 삼위일체, 1424~1427》 벽화에서 기하학적 원근법을 사용했다. 그동안 평면적으로만 느껴졌던 작품들과 달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 뒤로 보이는 돔 구조의 배경이 입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마사치오 이후에도 많은 작품에서 원근법을 사용하였으며 더욱 다채로운 주제들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성화(聖畫)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495~1497》 벽화는 선원근법이 완벽하게 적용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장면은 성경(聖經)에서 신약(新約)에 해당하는 마태복음 26장 20~22절, 누가복음 22장 20~23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는 12명의 제자 중에서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알고, 이미 여러 구절에서 언급하였다. 이날은 예수가 십자가에 지기 전 유월절 밤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는 날로,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신약이라는 뜻이 새로운 약속을 말하는데, 예수가 제자들과 약속하는 내용이 전반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성경 속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매번 등장하는 중요한 테마다. 마치 그러한 일이 미리 계획된 것처럼 누군가를 통해 이루어지고를 반복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인물과 사건들에 대하여 같은 시대에 기록한 것이 아님에도 여러 권에서 동일하게 다룬 내용들이 상당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인간으로서 신의 계획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 《The Last Supper, 1495~1497》, Leonardo da Vinci(source: google image)

그림에서 표현된 만찬의 현장은 다빈치가 바라본 관점으로서, 성경에서 표현되고 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표현된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유월절 저녁 대신, 밝은 빛이 드는 오후 혹은 동이 트고 난 후를 표현한 것처럼 그의 시간은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은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맞이할 예수를 위로하며 감싸 안고 있는 것 같다. 르네상스 이전 시대에도 성화(聖畫)를 주제로 그렸던 화가들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다빈치만의 화풍이 담긴 벽화로 남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삶에서 오는 난제들을 해결해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다소 생소한 것일지라도 열린 사고로 기꺼이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해결해보려 최선을 다 해봐야 한다. 주위의 반대 혹은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생각한 바가 옳다고 판단했다면 스스로를 믿고 그것을 증명해낼 수 있는 심지도 필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다양한 결과로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통해 스스로 한계를 깨닫기도 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해갈 수 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의 경쟁자와 만나게 되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이를 계기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능력을 발전시키게 된다면, 우리는 기꺼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긴다는 건 그 과정에서 내가 충분히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가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몰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로써 누군가는 이전에 없던 것을 발견하고 그를 발전시켜 틀을 형성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독자적 스타일을 완성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계승하기도 한다. 일련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시대의 르네상스는 아름답게 꽃피워 오래도록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재성은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 시대에 여러 사람에게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만하다. 우리가 만난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말이다. 

 

 

 

이지혜     휴먼이미지학 박사
              휴먼이미지 디자이너
              휴먼이미지디자인 평론가 
              문화예술평론가
              (사)휴먼이미지디자인학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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